韓国料理 サムギョプサル
韓国料理の定番と言えば、サムギョプサル。
その作り方で一番わかりやすいのは、NHKテキストにあるコウケンテツ氏の説明。
https://www.kyounoryouri.jp/recipe/43630_%E3%82%B5%E3%83%A0%E3%82%AE%E3%83%A7%E3%83%97%E3%82%B5%E3%83%AB.html
다만, 이것은 당시 향신료가 비쌌던 것과 신선한 고기를 오래 유지하기 힘들었던 시대상도 감안해야 한다. 한국에서 고기구이 문화가 외식문화로 보급된 것은 1차적으로는 구한말 서양 요리가 들어오면서였고, 2차적으로는 식육 소비량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한 1970 ~ 1980년대부터였다.
언론에서 삼겹살이 처음 언급된 것은 『동아일보』 1934년 11월 3일치 4면이다.[3] 이때는 '세겹살' 이라고 했다. 사실 삼겹살은 살과 지방 부분이 3번 겹친 고기를 의미하니 삼겹살보다는 '세겹살' 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 삼겹살이라는 어휘는 경향신문』1959년 1월 20일치 4면에 처음 언급되었다.
삼겹살이 특히 널리 보급된 계기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은 아직 없다.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설은 1980년대에 강원도 탄광촌의 광부들이 기름기 있는 음식을 먹으면 목의 먼지가 씻겨나가겠거니 하며 먹었다는 설이다. 이에 대한 흥미로운 사례로, 태백시의 3대 명물 요리로 '태백산 목장의 소고기'와 '힘겨운 노동의 시름을 달래려 광부들이 즐겨 먹던 돼지고기(삼겹살)'[4]와 '삼겹살 먹기도 힘들 정도로 주머니가 가벼울 때, 그래도 힘든 일 하려면 고기는 먹어줘야 하니 대신 먹은 물닭갈비(그래서 육수를 붓고 끓여 양을 불린다)가 있다.
이 외에는 1960년대에 소주 가격이 하락하고 더 많이 마실 수 있게 되자 그에 맞는 안주가 필요해서 값싼 돼지고기를 먹게 되었다는 '소주 가격 하락설', 1960년대에 건설 노동자들이 슬레이트에 고기를 구워먹다 퍼졌다는 '슬레이트설'이 있다(여기서 말하는 슬레이트는 석면이다.). 또, 1970년대 말 우래옥이라는 식당이 처음으로 삼겹살을 메뉴에 올림으로써 보편화되었다는 '우래옥설', 개성 상인들이 값싼 돼지 고기를 그나마 비싸게 팔기 위해 고안해냈다는 '개성 상인설' 등이 있다. 주영하 교수는 '음식전쟁 문화전쟁'이라는 책에서 삼겹살의 기원이 주한미군부대 근처에서 미군들의 바베큐 파티를 보고 이를 주민들이 따라하게되면서 당시에는 그나마 구하기 쉬웠던 삼겹살을 폐드럼통에 구워먹은 게 시작이 아닐까라고 기술한 바 있다. 삼겹살의 시작이라는 책에서는 삼겹살의 기원을 1970년대 중반 경제발전과 더불어 육류소비 증가에서 찾고 있다. 또한 1980년에 판매되기 시작한 부루스타라는 휴대용 가스레인지가 보급되면서 전국적으로 삼겹살을 구워먹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지만 정부 수립 이후 한국에서 고기 소비량이 실질적으로 증가한 것은 최소한 1970년대 중반부터였으니[5] 앞의 두 설은 애당초 맞지 않고, 1980년대까지만 해도 삼겹살이 싸구려 음식으로 취급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개성 상인설 역시 별 근거는 없다. 1979년 8월 25일 동아일보에 "우후죽순처럼 주점가에 삼겹살집이 늘어간다"는 언급이 나오는 것을 보면 70년대 말부터 삼겹살 소비 문화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고, 삼겹살이 전국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 가스레인지의 확산 시기와 겹친다.
당시 주말에 각 가정에서 로스 구이[6]라는 이름으로 주말에 돼지고기를 구워먹는 것이 인기였는데, 입식 부엌과 가스렌지의 보급으로 식으면 맛이 없는 삼겹살을 부엌에서 갓 구워 거실이나 식탁에서 비교적 부담 없는 가격으로 먹을 수 있었다. 당시 신문에서도 주말에 로스 구이를 구워먹는 문화를 소개하며 한국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보도하곤 했다. 어쨌든 이 당시엔 따로 삼겹살이라고 부르기보다 로스 구이라고 불렀고 부위도 지금처럼 철저하게 삼겹살만을 선호하기보다 앞다리살 등 이 부위 저 부위 함께 구워먹는 '돼지고기 구이'로서의 인식이 더 강했다.
이렇게 삼겹살이 대중화되던 시기의 삼겹살, 아니 육류의 거의 대부분은 냉동 상태로 유통되었다. 즉 이 당시의 삼겹살은 냉동삼겹살, 흔히 냉삼으로 불리는 형태였다. 이는 기술 발전으로 콜드체인 유통이 자연스러워진 지금과 달리 당시로서는 냉장고 보급이 잘 이뤄져 있지 않아 부패 방지를 위해서는 냉동 상태로 유통하는 것이 안전하고 편했기 때문. 당시에는 정육점에서 삼겹살을 달라고 하면 육절기로 바로 썰어 담아 주었고, 지금보다 고기의 두께가 상대적으로 얇았다.
그러던 것이 가정에도 냉장고가 완전 보급이 이뤄지고 중간 유통 과정에서도 냉장 차량이 보급되면서 콜드체인 유통망이 완성되면서 삼겹살 유통의 주류는 냉장 삼겹살로 바뀌었다. 냉삼 시절에 비해 고기가 훨씬 두꺼운 냉장 삼겹살은 육즙을 더욱 잘 보존할 수 있으면서도 두껍게 씹는 맛이 있고 무엇보다 냉동으로 인한 맛의 손실이 없어서 인기를 끌었다. 또한 이 시기에는 냉장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수입 육류 역시 냉장 형태로 들어오게 되어 냉장 수입 삼겹살 역시 맛볼 수 있게 되었다. 냉동 삼겹살은 아래에 설명하는 대패 삼겹살 형식 아니면 품질이 떨어지는 저가 수입 삼겹살 정도로 줄어들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2020년대에 들어와 뉴트로 열풍이 불면서 다시 냉삼 전문점이 제한적이나마 인기를 끌게 되었다. 냉동 삼겹살은 냉장한 것에 비해 맛이 떨어지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으나 냉동 기술 역시 발전하면서 이러한 신선도나 맛의 저하를 상대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되었고, 두꺼운 냉장 삼겹살은 속까지 바삭하게 익히려면 겉을 태우고 남을 정도로 과도하게 익힐 수 밖에 없지만 이 보다는 얇은 냉삼은 바삭한 맛을 즐기는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었다. 다만 원가 면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냉삼이 뉴트로 열풍을 타고 가격 거품이 심해졌다는 불만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것 역시 사실이다.
この肉が豚肉であるとは限らない。
コメント
コメントを投稿